VOLUME II · UNIT III · LESSON 02

고려의 정치적 변동과 대외 관계

서희의 외교 담판, 강감찬의 귀주대첩, 윤관의 별무반, 그리고 무신정변과 몽골의 침입. 470년 고려는 끊임없이 외세와 내부의 도전에 응답해야 했다.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10-02 고려의 대외 관계(거란·여진·몽골)무신정변을 통해 정치적 변동을 이해한다.
SECTION · 01

거란과의 3차례 전쟁 — 서희와 강감찬

10세기 말, 만주에서 일어선 거란(요)이 송을 압박하다가 고려를 노렸다. 고려가 어떻게 외교와 전투로 거란을 격퇴했는지 — 서희와 강감찬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졌다.

거란(요) 영토
거란(요) 영토 (10~12세기)만주와 화북을 차지한 거대 제국. 송과 고려를 압박.
고려군
고려군의 모습중앙군 2군 6위 + 지방군 — 정예 부대로 거란·여진·몽골과 맞서다.

⚔️ 3차례 거란 침입

1ST · 993

서희의 외교 담판

소손녕 vs 서희

거란의 1차 침입.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옴. 서희가 직접 적진에 가서 담판. "고려가 송과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강동 6주를 우리에게 주면 길이 열린다."

🏆 결과 — 강동 6주 확보, 영토 확장
2ND · 1010

현종 피난·양규의 분투

강조의 정변이 빌미

거란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 통솔. 개경까지 함락당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 그러나 양규 등이 곳곳에서 분전 — 거란군이 보급 끊겨 퇴각.

⚖️ 결과 — 위기 극복, 현종 환궁
3RD · 1018~1019

강감찬의 귀주대첩

소배압 10만 대군 격파

거란의 마지막 침입. 71세의 강감찬이 상원수로 출진. 흥화진에서 미리 강물을 막아 두었다가 풀어 거란군을 휩쓸고, 귀주에서 결정타. 거란군 1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뿐.

🏆 결과 — 거란 침입 종결, 100년의 평화
SOURCE · 서희의 담판
『고려사』 서희전

"우리나라(고려)는 곧 고구려의 옛 땅을 이어받은 나라이오.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했소. 그러니 만일 땅의 경계를 따진다면 그대들(거란)의 동경(요동)도 우리의 옛 땅이오. (…) 그대들이 만약 여진을 평정해 우리가 옛 땅을 회복하고 성을 쌓아 길을 통하게 되면, 어찌 사신을 보내지 않겠소?"

—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에게 한 말 (993)
SECTION · 02

여진과 몽골 — 새로운 거인들

거란이 약해진 자리에 여진(금)이 솟아올랐고, 100년 후 그 여진을 넘어 몽골이 세계 제국을 이룩했다. 고려는 다시 격동에 휘말렸다.

⚔️ 여진(금)과의 관계

1107
윤관의 별무반과 동북 9성
여진이 고려 국경을 위협. 윤관이 신기군(기병)·신보군(보병)·항마군(승병)으로 구성된 별무반을 편성해 여진을 정벌. 함흥평야 일대에 동북 9성 축조. 그러나 1년 뒤 여진의 요청으로 9성 반환.
1115
금의 건국 — 거꾸로 사대 요구
여진의 아구다가 금(金)을 세움. 거란(요)을 멸망시키고 거대 제국으로 성장. 1126년 고려에 사대를 요구 → 이자겸이 이를 수용(논란이 큰 결정).
1126
이자겸의 난
이자겸이 인종을 폐위하려 함. 정변은 진압되었으나 — 외척 세력의 발호와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드러남.
1135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서경(평양) 출신 승려 묘청이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 "대위국" 국호 선포. 1년 만에 김부식이 진압. 신채호 —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자주성과 사대주의의 갈림길로 평가).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1236~1251)몽골 침입 때 강화도에서 새겼다. 81,258매 —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막아내려는 호국 불교의 의지.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합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 — 자연 통풍·습도 조절로 700년간 완벽 보존. 세계유산.

⚔️ 몽골(원)의 침입과 강화 천도 (1231~1270)

1231 · 1차
몽골 침입의 시작
몽골 사신 저고여가 살해되자 보복으로 침공. 박서가 귀주성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화의. 다음 해 무신 집권자 최우강화도로 천도(1232) — 30년 항전의 시작.
1232 · 2차
처인성 전투 — 김윤후의 화살
처인성(용인)에서 승려 김윤후가 몽골 사령관 살리타이를 활로 사살. 몽골군 후퇴 — 백성과 천민(처인부곡민)이 합심한 승리.
1236~1251
팔만대장경 조성
강화도에서 16년에 걸쳐 팔만대장경 조성. 81,258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막겠다는 호국 불교의 의지. 결과는 — 정신적 단결의 상징, 그리고 인쇄·불교 학문의 결정체.
1253 · 5차
충주성 — 김윤후 또다시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70일 농성.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이 성을 지키면 모두 양인으로 풀어주겠다"고 약속 — 결국 격퇴. 사회 신분제의 균열도 시작.
1270
개경 환도 · 삼별초의 항쟁
고려 정부가 몽골과 화의하고 개경으로 환도. 그러나 삼별초(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는 항복을 거부, 진도·제주도로 옮겨가며 1273년까지 항쟁.
DEEP DIVE · 강화 천도의 의미

"몽골의 말발굽이 바다는 건너지 못한다"

1232년 최우의 강화 천도는 단순한 피난이 아니었다. 몽골은 세계 제국이 되어가던 중이었지만, 유목민이라 바다 위 전투에 약했다. 강화도는 개경에서 가깝지만 좁은 해협(염하)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한 가지 지리적 사실이 30년 항전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강화 천도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몽골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자주적 의지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층은 강화도에서 안전하게 살면서 본토의 백성은 몽골에 짓밟히게 둔 무책임이기도 했다.

"강화도의 화려한 궁궐 안에서 무신 정권은 사치를 누렸고, 본토의 농민은 몽골에 약탈당하고 노예로 끌려갔다. 항전의 의지는 누구의 것이었나?" — 강화 천도에 대한 비판적 관점

이런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처인성과 충주성의 승리다. 두 전투 모두 승려와 천민·노비가 주축이었다. 지배층이 강화에서 도피한 사이, 정작 몽골을 막아낸 것은 본토에 남은 '천한 사람들'이었다.

SECTION · 03

무신정변 — 100년의 무신 정권

1170년, 차별받던 무신들이 들고일어났다. 이후 100년간 무신들이 고려를 사실상 지배. 권력은 칼끝에서 나왔고, 노비들까지 신분 해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 무신정변과 그 후

1170 (의종 24)
정중부의 난 — 무신정변
의종이 보현원에서 잔치를 벌이며 무신을 모욕(수박희). 정중부·이의방·이고가 들고일어남. "문관의 갓을 쓴 자는 비록 서리라도 모두 죽여라!" — 수십 명의 문신 학살. 의종 유배, 명종 즉위.
1170~1196
무신들의 권력 다툼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무신끼리 서로 죽이며 권력 이동. 1196년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 장악.
1196~1258
최씨 무신 정권 (60년)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 교정도감(최고 권력 기구), 삼별초(사병). 왕은 허수아비, 최씨가 실질 통치자. 강화 천도(1232)도 최우의 결정.
1198
만적의 난 — 노비의 외침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동료 노비들과 모의: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누구든 때가 오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사를 앞두고 발각되어 처형. 무신정변이 신분제 흔들기로 이어진 가장 충격적 사건.
1258
최씨 정권 종말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당하며 60년 최씨 정권 끝. 그러나 무신 정권은 김준 → 임연 → 임유무로 계속 → 1270년 임유무가 죽으며 무신 정권 완전 종식.
SOURCE · 만적의 외침
『고려사절요』

"국가에 경계의 난(무신정변) 이래로, 천한 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 많이 있었다.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우리만 도리어 채찍 아래 시달리며 살겠는가? (…) 각자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운다면, 천민이 없어지고 모두 공경(公卿)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만적이 동료 노비들에게 한 말 (1198)
SECTION · 04

인물 — 사건 매칭

왼쪽 인물과 오른쪽 사건을 짝지어 보자. 6쌍.

👥 인물·사건 매칭 (6쌍)

0 / 6

왼쪽 인물을 클릭한 뒤 오른쪽 사건을 클릭. 6쌍 모두 짝지은 후 정답 확인.

WHO · 인물
서희
강감찬
윤관
묘청
최우
만적
WHAT · 사건
서경 천도 운동·금국 정벌론 (1135)
거란 1차 침입 시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 확보 (993)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 노비 봉기 모의 (1198)
별무반 편성과 동북 9성 축조 (1107)
강화 천도와 팔만대장경 조성 시작 (1232~)
귀주대첩으로 거란 10만 대군 격파 (1019)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거란(요) 침입에 서희(993·외교 담판·강동 6주) → 양규(1010) → 강감찬(1019·귀주대첩)으로 3차례 격퇴.
  • 여진(금) 관계: 윤관의 별무반·동북 9성(1107) → 금 건국 후 사대 수용(1126).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은 김부식에게 진압.
  • 몽골 침입(1231~) → 최우의 강화 천도(1232) + 30년 항전. 처인성·충주성에서 김윤후가 승려·천민과 함께 격퇴. 강화에서 팔만대장경 조성.
  • 무신정변(1170 정중부) 후 100년 무신 정권. 최씨 정권 60년(1196~1258). 1198년 만적의 난 — 한국사 첫 신분 해방의 외침.
  • 1270년 개경 환도. 삼별초가 진도·제주도로 옮겨 1273년까지 항쟁 — 자주성의 마지막 불꽃.